억대 연봉도 싫고, 의사도 싫고, 박사도 싫고, 방송작가도 싫다! 미국의 찰리 트로터(Charlie Trotter), 영국의 키스 플로이드(Keith Floyd)와 릭 스타인(Rick Stein). 이들의 공통점은 요리와는 전혀 다른 일에 종사하다 뒤늦게 요리에 인생을 건 스타 요리사들이다. 찰리 트로터는 미국 위스콘신 대학에서 정치학을 공부하다 요리에 대한 숨은 열정을 발견했고, 키스 플로이드는 저널리스트로 활약하다 군대에서 주방을 담당한 후 요리세계로 진출했고, 릭 스타인은 옥스퍼드대 영문학과를 졸업한 후 우연히 생선과 해산물 전문 레스토랑을 열어 스타가 되었다.
국내에서도 최근 요리사로 전직하기 위해 ‘르 코르동 블루 숙명 아카데미’ 같은 해외유명 요리학교의 한국분교에 입학하거나 수천만원을 들여 요리유학을 떠나는 이도 늘고 있다. 뒤늦게 요리에 인생을 건 4명의 주인공을 만나본 것은 이 때문이다. 명예를 버리고 요리를 택한 이유, 요리사 세계의 빛과 그늘을 들여다보았다.
‘토크 비스트로’ 장정은 사장 | 연봉 1억원 포기하고 요리사 택해
서울 강남구 선릉역 근처의 15평 남짓한 레스토랑 ‘토크 비스트로’(toque bistro·요리사의 모자라는 뜻). 2년 전 문을 연 이곳의 주메뉴는 샌드위치. 도쿄, 하바나, 뉴욕, 오슬로 등 각 도시의 맛을 샌드위치화한 이름이 이색적이다. 오슬로에는 연어, 하바나에는 닭가슴살, 도쿄에는 와사비를 곁들인 게살이 풍부해 독특한 맛을 자랑한다. 값도 5000원으로 저렴하다. 이곳의 여주인 장정은(33) 사장은 한때 연봉 1억원을 받던 은행원이었다. 미 버지니아주의 명문 윌리엄 앤 메리 대학에서 외교학을 전공한 수재로, 미국 10대 은행에 꼽히는 선트러스트 은행에 취직했다.
하지만 그녀는 “하루종일 앉아 서류 들여다보는 일이 재미없다”며 야간에 2년제 대학(커뮤니티 칼리지)에서 요리를 배우기 시작했다. 직장도 그만두고 바로 현장으로 향했다. “프랑스의 르 코르동 블루, 미국의 CIA 등 유명 요리학교에 갈까도 생각했지만 학비도 비싸고 학교보다 실전에서 더 많이 배울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어요.”
신문에 난 구인광고를 보고 근처 그리스ㆍ이탈리아 식당에 취직했다. 시급 6달러짜리 주방보조원이었다. 처음에는 5시간 동안 송아지 고기만 두들기고, 2시간 동안 새우껍질을 까야 했다. 팔목이 끊어질 듯하고 하루종일 서있느라 다리도 저렸다. 하지만 노력과 열정을 지닌 그녀는 금세 부족한 시간을 만회해나갔다. 6개월 만에 점심을 책임지는 파트장이 되었다. “잘못 하면 프라이팬이 날아오는 것은 예사입니다. 예부터 ‘주방군기가 군대보다 심하다’란 말이 있잖아요. 요리사들은 단시간 내에 빨리, 예쁘게 음식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그 스트레스가 엄청납니다. 실수라도 하면 곧바로 호된 질책이 이어지죠. 기술이 없어도, 학벌이 낮아도 발 들이기 쉬운 직종이다보니 빈민촌 흑인 친구들도 많았어요. 하지만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세계 각국에서 많은 사람들을 접했기
때문에 적응이 빨랐던 것 같습니다.”
2001년에 귀국, 힐튼 호텔에서 6개월간 무보수로 일했다. 이후 몇몇 식당의 주방을 거쳐 2003년 ‘토크 비스트로’를 창업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방장이 주인인 식당이 거의 없는 점이 안타까웠어요. 샌드위치 맛도 특징이 없이 햄, 치즈, 참치 샐러드로 똑같더군요. 유명한 식당은 값이 9000원, 1만원으로 너무 비싸고요.”
오픈 후 첫 2개월 동안은 너무 힘들어 식당을 팔아버릴 생각도 해봤다는 장정은 사장. 하지만 입소문을 타고 단골손님이 늘어나면서 월평균 매출액은 1000만원을 웃돈다. 장 사장은 “닭 한마리로 365일 다른 맛을 만들어낼 수 있는 요리가 재밌다”며 “창의력를 발휘할 수 있는 직업이 요리사”라고 그 매력을 말했다. 하지만 헛된 기대를 안고 이 길로 들어오는 것은 결사 반대다. 적어도 한 달 동안 식당에서 일을 해본 뒤 결정해도 늦지 않다는 것. “노력하면 꿈을 이룰 수 있습니다. 하지만 12시간 일하고, 다리의 실핏줄이 터지고, 팔목은 항상 아프고, 데이고 베이는 등 어려움을 감수해야 합니다. 결코 화려하지 않습니다.”
‘로이’ 노종헌 사장 | 고려대 의대 졸업, 아시안 퓨전 레스토랑 창업
서울 강남구 신사동 도산공원 근처에 위치한 아시안 퓨전 레스토랑 ‘로이(Royee)’ 노종헌(38) 사장도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그는 고려대 의대를 졸업한 의사 지망생이었다. 가업(家業)인 병원의 원장직을 물려받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하지만 병원이 부도 폐업했고, 공중에 붕 뜬 그는 무작정 미국유학을 떠났다. 미국 매사추세츠주립대에서 회계학을 공부했다. “인생을 다시 시작하려고 했죠. ‘정말 잘하고 좋아하는 일이 뭘까’ 생각했습니다. 가발가게와 일식집 아르바이트 등 몸으로 부딪치는 일을 하니까 좋았어요. 막연히 음식점을 차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요리를 배워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이전까지 노 사장은 라면 하나 못 끓이고, 칼도 잡아보지 않았던 ‘요리치’였다. 늦게 시작한 만큼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배울 곳을 찾았다. 미국의 유명 요리학교 ‘CIA(Culinary Institute of America)’를 택했다. 2년 준학사 과정에 학비만 4000여만원이 들었다. 노 사장은 “땀 흘리면서 누군가를 위해 요리를 하는 게 좋았어요. 먹고 난 후 사람들의 반응을 보는 것도 즐겁고요. 음식은 정직해서 남긴 접시를 보면 알 수 있어요. 절대 눈속임을 해서도, 양이나 재료가 달라져서도 안됩니다”라고 말했다.
귀국 후 워커힐 호텔에서 일하다 1년 전 ‘로이’를 창업했다. ‘부드러운 삼겹살찜과 와사비향의 으깬 감자’ 같은 한식과 양식의 퓨전 레스토랑이다. 노 사장은 “한국인의 입맛이 생각보다 훨씬 보수적이라서 새로운 음식에 대한 호기심이 없다”며 “초기에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고 설명했다. 지금은 월 평균 매출액이 1000여만원. 의사가 된 친구들을 보면 부럽지 않을까. “안과의사는 하루종일 컴컴한 곳에 앉아서 눈을 치료해야 합니다. 그보다 훨씬
낫지 않나요? 친구들을 부러워한 적은 없습니다. 욕심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에 부러워하는 거죠.”
노종헌 사장은 16살 때부터 당뇨를 앓고 있기 때문에 먹는 즐거움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때문에 맛없는 음식을 내놓는 것은 스스로도 용납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의학을 배운 경험을 살려 손님의 체질에 맞는 음식을 권해주기도 한다. “성실함이 최고입니다. 일을 사랑하면 성실함은 따라오죠. ‘한번 해보지 뭐’ 하는 마음으로 하면 학교는 졸업해도 실전에서 도태됩니다. 요리사라면 자신이 아니면 못 만드는 음식을 한번 만들어보고 싶지 않을까요?”
‘일마레’ 청담점 정한진 요리사 | 서울대 미학과 졸업, 르 코르동 블루 수석 졸업
하얀 조리복을 입었지만 여전히 학자 티를 풍기는 정한진(44) 요리사. 그는 서울대 미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한 뒤 논문을 쓰기 위해 1996년 프랑스 파리 8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곳에서 그는 인생의 대전환을 해버렸다. 2002년 르 코르동 블루에 등록, 1년 동안 요리와 제과ㆍ제빵을 공부했다. 결과는 수석 졸업. 그의 나이 마흔둘이었다. “20년 동안 미학만 공부하다 보니 너무 지쳤거든요. 프랑스의 스타 요리사인 알랭 뒤카스가 ‘요리는 하루살이 예술작품’이란 말을 썼듯이 요리도 하나의 창조잖아요. 오랫동안 책상물림만 하다보니 몸을 움직이면서 하는 일이 좋아지더군요.”
물론 14살 때부터 요리사의 길을 선택하는 프랑스의 젊은이들과 경쟁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3개월 동안 프랑스 샹젤리제 거리의 최고급 식당인 ‘라세르’에서 일했습니다. 매일 아침 6시30분에 일어나 출근, 밤 12시20분 마지막 차를 타고 집에 들어갔어요. 스무 살 먹은 요리사도 5일 일하고 나면 휘청거려요. 어떤 때는 이틀 동안 점심, 저녁을 거른 적도 있었어요.” 교수가 될 줄 알았던 아들이 요리사가 되겠다고 하자 부모님은 당황했다. 하지만 그는 “창고에 가득 쌓여있는 미학 관련 책은 아깝지만 요리사의 길을 택한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정한진 요리사는 귀국 후 1년 동안 고급 프렌치 레스토랑 ‘라미띠에’에서 일하다 최근 스파게티 전문 레스토랑 ‘일마레’ 청담점으로 옮겼다. 그는 “2000년부터 요리, 보석, 의상 등을 공부하러 프랑스로 몰려오는 젊은이들이 많다”며 “해외유학을 했다고 해서 장밋빛 미래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니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요리를 좋아한다는 것은 동기일 뿐입니다. 자기일에 대한 애착이 가장 중요하고, 그 다음이 노력과 성실함, 세 번째가 창의력입니다. 요리사는 육체적으로 힘들면서 보수도 적어요. 사회적인 지위가 높지도 않죠. 수많은 르 코르동 블루 졸업생이 일을 못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합니다.”
그의 꿈은 정통 서양식 레스토랑을 내는 것. 늦은 선택이었기에 더 소중할 수밖에 없는 꿈이다. “저는 단순해 보이지만 재료 고유의 맛을 살려내는 음식을 좋아합니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서양요리가 제대로 자리잡지
못했는데, 그 역할을 하는 데도 일조하고 싶어요. 프랑스 요리 역사나 프랑스 요리 용어를 정리해보고 싶은 욕심도 있지만 지금은 여유가 없네요.”
‘샐러드 컴퍼니’ 정미현 실장 | 방송작가 그만두고 케이터링 업체 사장으로
결혼 피로연이나 하우스 파티, 행사 연회 등에서 음식은 필수요소다. 한때 부유층에서만 누리던 케이터링(cateringㆍ출장연회)이 일반화되면서 최근 케이터링 업체도 다수 생겨났다. ‘샐러드 컴퍼니’ 정미현(31) 실장은 방송작가 출신으로 뒤늦게 이 업계에 뛰어들었다. 이화여대 가정관리학과를 졸업한 후 MBC ‘시사매거진 2580’에서 방송작가 생활을 시작했다.
“5년 동안 직장생활을 하니 재충전하고 싶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요리를 좋아했거든요. 집에 손님이 오시면 엄마가 요리메뉴를 짜고 식탁을 꾸미는 걸 보고 자랐어요. 지금도 그릇이며 음식 레시피 등이 필요할 때면 엄마 도움을 받아요.”
그녀는 해외유학이 아닌, 국내 교육기관에서 요리를 배운 경우다. ‘라퀴진’에서 1년 동안 요리, 꽃꽂이, 테이블 세팅 등의 정규과정을 마쳤다. 600여만원의 비용이 들었다. 부모님은 “그런 일을 해서 돈을 벌 수가 있느냐”며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는 2003년 동료와 함께 과감히 회사를 차렸다. “회사에 들어갈 수도 있었지만, 어차피 헤쳐나가야 할 거라면 처음부터 자기 사업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정미현 실장이 하는 일은 다양하다. 파티에 제공되는 음식 케이터링부터 잡지의 요리화보 촬영, 광고 촬영, 레스토랑 컨설팅까지 수없이 많다. 처음에는 다른 업체에서 취소했거나 급한 주문을 대신해주는 것밖에 할 수 없었지만 1년 후 입소문이 나면서 안정적인 거래선이 확보됐다. 월매출은 평균 300만∼1000만원 선. “이 업계는 엄청나게 냉혹한 세상입니다. 맛이 없거나 서비스가 나쁘다는 소문이 나면 버틸 수 없어요. 저는 키위 주스를 하나 만들어도 새 블렌더보다 칼날이 무딘 믹서기를 사용합니다. 아삭아삭 씹히는 맛을 살리기 위해서죠. 하루종일 300인분 주스를 만드느라 힘은 들어도 고객은 그 정성을 다 알거든요.”
“자금을 투자받아 업체를 키우라”는 제의도 있었지만 거절했다. 직접 장을 봐서 다듬고, 요리해서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내는 그 즐거움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 하루종일 준비하느라 몸이 부서질 것처럼 힘들어도 행사가 끝나면 희열을 느낀다고 한다.
“40대 주부부터 대학생까지 ‘일을 해보고 싶다’는 전화가 무척 많이 옵니다. 하지만 저는 ‘섣불리 하지 말라’고 충고합니다. 음식을 다 만들어놓았는데 행사 당일 취소하거나 심지어 돈을 떼인 경험도 있어요. 단순히 요리만 좋아해서는 안되고 비즈니스 마인드가 있어야 해요. 사람과의 관계, 문제발생시 처리능력, 순발력 등을 갖춘 팔방미인이 되어야 합니다.”
박란희 주간조선 기자(rhpark@chosun.com)